산행

북촌에서 인사동까지

2025년 4월 · 서울 도심 산행

북촌 한옛길 골목

아침 일찍 북촌 한옛길에 섰다. 골목의 돌담 아래, 오래된 이끼가 자란 자리에서 록(綠)의 재료를 모았다. 이끼는 젖었을 때 색이 짙고, 마르면 회빛으로 빠진다. 그래서 채집한 뒤 바로 종이 위에 문질러 자국을 남겨 두었다. 그 자국이 색의 기준이 되었다.

골목을 지나 창덕궁 담장을 따라 걸었다. 담 아래 흙은 어딘가 다른 흙보다 어둡고 무거웠다. 손으로 조금 떠 보니, 입자가 고우면서도 무게가 있었다. 이 흙은 그림의 깊은 음영에 쓰기로 했다. 병에 담으며 "창덕궁 담 아래, 무겁고 고움"이라 적었다.

인사동의 황토

점심 무렵 인사동에 닿았다. 한 골목의 도자 가게 앞, 오래된 황토가 쌓여 있었다. 허락을 구해 조금 얻어 말려 보니, 따뜻하면서도 탁하지 않은 황이 나왔다. 이 황은 SOL의 중간 층, 하루의 한낮을 담는 데 쓰기로 했다.

걸어서만 닿을 수 있는 색이 있다. 차로 가면 그냥 지나치는 색.

저녁이 되어 스튜디오로 돌아왔을 때, 배낭에는 네 병의 흙과 이끼 자국이 든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. 반나절의 걸음이, 그림의 네 가지 색이 될 씨앗이었다. 색보에 적으며, 다음 산행은 한강 쪽으로 잡았다.

〈북촌에서 인사동까지〉 — Aether Protocol 현장 기록, 2025년 4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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